뉴스

POST

[거꾸로 읽는 경제] ‘운’으로 뽑히던 H-1B는 끝났다, 한국인에겐 양날의 칼

트럼프 행정부가 바꾸는 미국 취업비자의 룰과 그 파장무작위 추첨 폐지·고임금 가중 선발 도입으로 인해글로벌 인재의 문에서소수 엘리트 관문으로

 image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업비자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미국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 제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간 유지돼 온 무작위 추첨 방식을 폐지하고, 고임금·고숙련 외국인 근로자에게 선발 확률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제도를 오는 2 27일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비자 1건당 10만 달러에 이르는 고액 수수료까지 부과하면서, H-1B는 더 이상 ‘글로벌 인재의 미국 진입로’가 아닌 ‘극소수 엘리트 인재를 위한 관문’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행정 규칙 변경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가 이민 정책 영역에서 구체화된 상징적 사례로 해석된다.

 

무작위 추첨에서가중 선발무엇이 달라지나=미 국토안보부(DHS) 2026 2 27일부터 새로운 H-1B 선발 규칙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규칙은 2027회계연도 H-1B 쿼터부터 적용된다. 핵심은 컴퓨터 로터리 방식의 무작위 추첨을 폐지하고, 임금 수준과 숙련도에 따라 선발 확률을 차등화하는 가중치 방식이다.

 

기존 제도에서는 연봉과 경력에 관계없이 모든 신청자가 동일한 확률로 추첨에 참여했다. 그러나 새 제도에서는 연봉이 높을수록 여러 개의 ‘추첨권’을 받는다. 최고 임금 구간 신청자는 4개의 기회를 부여받고, 최저 임금 구간은 1개만 주어진다. 형식상 추첨을 유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봉이 선발 여부를 좌우하는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미 이민국(USCIS) 대변인 매슈 트래게서는 “기존 무작위 추첨 방식은 미국 기업들이 미국인 근로자보다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악용돼 왔다”며 “새 제도는 의회가 의도한 H-1B의 취지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의식, ‘기술 인재가 아니라임금 질서=트럼프 행정부가 H-1B 제도를 문제 삼은 핵심은 기술 유출이나 이민 규모 자체가 아니다. 초점은 임금과 노동시장 구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행정부는 H-1B가 고급 인재 유치 수단이 아니라, 기업들이 인건비를 낮추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미국 기업들이 수천 명의 미국인을 해고하면서 동시에 H-1B 비자를 통해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인식은 비자 수수료를 기존 수천 달러 수준에서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한 조치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 미국 상공회의소와 미국대학협회(AAU)는 “기업과 연구기관의 인재 확보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버릴 하월 판사는 이를 기각했다. 하월 판사는 “정책의 타당성은 정치의 영역이며, 대통령의 이민 규제 권한 범위 내에 있다”고 판시했다.

 image

달라지는 미국 비자관련 제도. [연합뉴스]

 

미국 기업의 이해관계도 갈린다=미국 기업들 역시 이번 변화에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대형 빅테크 기술기업은 H-1B 최대 수혜자였다. 이들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제시할 수 있어 새로운 제도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타트업, 병원, 중소기업은 사실상 H-1B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액 수수료와 고임금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H-1B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인도에는직격탄’, 한국에는선별적 기회=이번 개편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는 단연 인도다. H-1B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인도 출신이며, 특히 신입·중급 IT 인력이 다수를 차지한다. 인도 현지 언론들은 “미국 취업의 사다리가 사실상 끊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한국은 영향이 상대적으로 복합적이다. 대기업과 연구기관 소속의 고숙련·고연봉 인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스타트업 취업이나 박사후연구원, 신입 엔지니어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에서 영주권 사업체 JOB USA를 운영하는 존 림 대표는 뉴스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인재의 미국 진출이 양극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고임금 취업이 가능한 IT 인재들에게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지만, 유통업계처럼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된 사업의 경우 한국인 지원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인재 이동의 지형 변화=정책 변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 호주, 영국, 싱가포르 등은 이미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한 비자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문턱을 높일수록 인재는 다른 국가로 이동할 것”이라며 글로벌 인재 경쟁의 판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H-1B 개편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해 온 미국 우선주의가 이민 제도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H-1B는 더 이상 다수의 외국인에게 열려 있는 기회가 아니다. 대신 미국 노동시장에 즉각적인 고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소수 인재만을 선별하는 도구로 재설계되고 있음은 주지할 사실이다.

 

미 국토안보부.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H-1B가 낳은 성공 신화=H-1B 비자는 과거 수많은 ‘이민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머스크는 미국 유학 이후 취업비자 신분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고, 이후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통해 미국 산업의 상징적 기업가로 성장했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인텔 전 CEO 파트 겔싱어 등도 외국 출신 전문 인력으로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새로운 H-1B 제도 아래에서 이러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훨씬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회 시장이지만, 이제 그 문은 ‘잠재력’보다는 ‘즉각적인 고임금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소수 인재에게만 열리고 있다. H-1B 개편은 글로벌 인재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그 문은 과거보다 훨씬 더 좁아졌다는 것이다.

 

출처: 뉴스투데이